교회 안의 자살 이야기
2005-09-21 11:14:43 read : 854
수업 시간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았다. "자기 교회 내에서 자살자가 있거나 교회 동료 가운데 자살한 사람이 있는 경험을 가진 사람은 손들어 보라." 45명 수업 시간에 9명이 손을 들었다. 그 이유를 조금 들어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었다. 학생 신분으로 임신한 여자, 성적 비관, 과거 연애 사실 노출, 인간 관계, 우울증. 전에 다른 학교에서도 같은 질문을 해보았는데 대동소이한 내용들이었고 비율도 엇비슷했다(좀 더 상위 대학이라고 말하는 곳은 35명 중 3명이었다). 자살을 철저히 반대하는 교회 내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자살의 대열에 합류하는 실정을 누가 알고 있을까?
나 또한 중3 시절 교회를 다닌 후 여러 자살자들을 목격했다. 고3 시절 자살한 학생부 회장,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죽어간 선배, 집을 나가 어디선가 시체로 돌아온 여학생 등. 이러한 사건들은 오랜 시절이 흐른 뒤 나의 기억의 저편에서 다시금 살아나와, 급기야 내가 심리 치료의 영역에 발을 디디게 된 원인이 되었다.
문제는 그러한 자살자를 목격한 사람이나 그 당사자 가족이 어디에서도 위로 받을 수 없는 구조 속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가 닫힌 의식 속에 숨어 있던 그러한 사건이 다시금 현실로 떠올라, 잘 살고 있던 사람을 목을 조르기도 한다. 혹은 나처럼 자살이라는 현실과 교리적인 자살의 이해의 상충으로, 즉 자살 경험과 신앙의 이해관계 속에서 자살의 '경험'이 숨죽이며 살고 있다. 이 때문에 자기가 곤경에 빠지고 힘들어지면, 자기 자신이 그처럼 죽을 수도 있다는 감정과 생각의 늪에 빠지게 된다.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가난한 사람, 지적인 수준이 낮은 자, 여자들의 자살이 많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구조의 문제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귀신이 도시보다 농촌에 많다는 것도 그 하나의 증거가 아니겠는가?
심리 치료를 하다 보면 그러한 딜레마에 걸린 사람을 보게 된다. 자기도 어쩌면 죽을 것 같다는, 혹은 살아 보려고 몸부림치지만 맨손으로 진흙벽을 오르듯 올라갔다가 다시 미끄러져 버리는 삶의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는 과정 속에서 좌절을 느끼고 자살자의 경험과 동일시 현상으로 생의 의지는 더욱 침몰하게 된다.
교회 내의 죽음 메시지
기독교 내의 많은 상담자가 있지만, 그들이 너무 쉽게 삶을 재단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회개하라"든지 "주님께 맡기라"든지 하는 말들을 너무 쉽게 하거나, "과거의 문제 때문"이라든지 "우울증 때문"이라는 등 진단적 용어를 너무 많이 쓰는 현상을 보게 된다.
폭행을 일삼은 아버지를 둔 딸이 남자 친구와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경우, 과거의 사건이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타당한 진단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는 것은 많은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런 진단적 용어를 쉽게 난발하여 힘든 사람을 더욱 곤경에 빠지게 한다. 이는 정신과 의사를 흉내 내려고 하는, 혹은 자신의 얄팍한 지식을 과신하는 경우다.
내 제자 중에 우울 경향을 지닌 여학생이 있었다. 그런데 그 여학생을 상담한 정신과 의사가 그 아이에게 한 말은, 아버지의 우울 경향이 유전된 것 같다고 진단한 것이었다. 그 이후 이 아이는 기분이 다운될 때면 그 의사의 말과 교회 내 자살한 후배의 영상으로 더욱 힘들게 돼버린다. 난 그 의사를 욕을 하며 비난했다. 그 여학생 앞에서 말이다.
자살 막는 메시지, 자살 부추기는 메시지
오래되지 않은 시기에 "가계에 흐르는 저주"라는 개념이 기독교인들에게 회자된 적이 있다. 많은 설교자들과 내적 치유자들이 가계에 흐르는 저주 형식의 강연과 설교가 한때 유행처럼 인용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을 상담하다 보면 그런 저주 개념이 내면에 자리 잡아, 스스로를 괴롭히는 사람을 보게 된다. "우리 부모님은 이혼했으니까" "난 죄를 지었으니까" "우리 조상은 이랬으니까" 하고 말이다. 어설픈 서구의 가족치료 이론과 기독교 교리가 만나,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을 죽이는 현상이 된 것이다.
<애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에서 미즈타니 오사무가 항상 한 말이 무엇이었나. "괜찮다. 괜찮다. 그럴 수도 있지"였다. 오사무가 어느 마약을 하고 자기 학대를 한 아이에게 했던 정죄적인 말 한마디로 죽게 한 후, 다시는 그 말을 꺼내지 않게 된다. "저 마약 했는데요?" "그럴 수도 있지." "저 원조 교제 했는데요?" "그럴 수도 있지." "저 자살하고 싶은데요"에서만 "절대 그것만은 안된다"고 외치고 있다. 그 모든 행위는 다시 고칠 수 있고 수정할 수 있는데, 죽음만큼은 돌이킬 수 없음을 오사무 선생은 경험으로 체득하고 있는 것이다.
안이숙 선생의 초기 저작은 <죽으면 죽으리라>이었다. 철저한 신앙을 지키기 위한 결단과 고난을 보여주는 책이다. 그 안이숙 여사의 최근 저작은 <그럴 수도 있지>이었다. 엄격한 신앙의 생활이 타인에 대한 너그러움과 여유의 마음으로 진행되었음을 엿볼 수 있는 제목이었다. 우리 교회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 "절대 안 돼"의 금령의 단계인가, "그럴 수도 있지"의 여유의 단계인가? 신학적으로는 다른 해석을 할 수 있지만, 인간 심리적 역동과 비추어 보면 절대 안되는 죽음의 메시지로 다가갈 수 있다. 반면 그럴 수도 있지는 치유와 회목의 메시지로 다가간다.
정신 치료의 역사에서도 이러한 논쟁의 흔적이 있다. 정신과 전문의들이 진단을 남발하는 과정에서, 사이코드라마의 창시자인 모레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진단과 치료는 구분되어야 한다. 진단이 옳다고 해서 치료가 옳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치료에 중점을 둔다면 우리의 진단적 용어는 많은 부분 패기 처분해야 한다. 즉 꿀병에 꿀의 이름을 붙인다고 그 꿀의 맛을 아는 것은 아니다.
의사들은 그처럼 이름 붙이는 것에 길들어져 있다. 그 고통을 당하는 인간 그 자체를 고민하지 않는다." 이 말을 이렇게 바꿔 볼까? "기독교 지도자들은 인간의 긍정적 미래를 확신하지 못한다. 그래서 전통적인 교리적 잣대로 앞에 놓은 무수한 인간의 삶을 재단하려고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편의적 잣대로 타인에게 적용함으로 많은 인생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그들은 왜 그 지경까지 되었는지 알려고 하지 않으며, 그 상황에 이르는 과정에서 자신의 책임이 없었는지 고민하지 않는다."
고통당하는 사람과 교회의 역할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다. 사랑은 온갖 허물을 덮는다고 했다. 내일 죽더라도 오늘 주 앞에서 웃으며 살게 만들어야 한다. 지난 과거로 현실을 재단하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걱정으로 현재의 삶을 구렁텅이로 빠뜨린다면, 우리는 사랑의 종교가 아닌 저주의 종교가 되어 버린다. 강대상에서 할 말과 개인적 만남에서 할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초기 목회 상담의 아버지인 안톤 보이슨이 자신이 정신적 문제를 앓게 됨으로 병원에서 많은 환자들을 보게 된다. 그들을 교리적인 재단으로만 이해했던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인간 개개인의 마음의 문제를 돕는 목회 상담의 문을 열게 되었다.
오늘 많은 은둔형 외톨이에서 중독자들, 그리고 내적 문제를 앓고 있는 사람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그런 노력을 하지 않을 경우 마음의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죽임으로, 혹은 무수한 타인을 해함으로 우리에게 비수의 칼을 들이댈 것이다. 정신 질환자가 일으킨 대구 지하철 참사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 예이다.
신학교에서 하나님에 대한 공부만 할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인간에 대해 더욱 연구하고 그 인간을 도울 수 있는 사역자로 훈련시켜야 한다. 그러한 사역자들이 선교하듯이 인간 실존으로 들어가서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그러한 사랑의 실천은 정신과 의사는 할 수 없다고, 농담 삼아 정신과 의사 친구들에게 말하고는 한다. "너희들은 그 사랑을 실천하려고 해도 얼마나 많은 환자를 받느냐가 정신 병원을 유지 시키는 근간임으로 시간을 낼 수도 없지 않느냐. 그러니 약이나 팔아라. 그리고 나머지 치료와 완결은 교회에 맡겨라" 하고 말이다. 그런데 아직 교회는 그런 마음의 고통을 앓고 있는 사람을 돕는데 미숙하게 보이는 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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