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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어떻게 보내야하나
2006-04-06 14:32:28   read : 915


… 예수의 행적따라 삶을 성찰하라


크리스천들에게 부활의 소망이 없다면 인생이란 자신의 무덤을 향해 걸어가는 고독한 여행에 불과하다.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은 복음의 핵심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는 ‘참회의 고난주간’이 14일부터 시작된다. 고난주간에 크리스천들은 예수의 행적을 따라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목회자들은 권면한다. 가족과 함께 그리스도의 고난의 발자취를 묵상하는 기회로 삼자는 것이다. 복음의 핵심이 되는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주님의 1주일간 행적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월요일은 ‘성전 청결의 날’. 예수님은 성전을 더럽힌 자들을 추방하시면서 ‘만민의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드셨음을 꾸짖으셨다(막11:15∼17). 우리의 몸은 성령님이 계시는 성전(고전 6:19)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강도의 소굴이 되었다고 채찍을 들지 않으실지 성찰하는 날이다.

화요일은 ‘변론의 날’. 희생 제물이 되기 전 주님의 가르침은 화요일에 집중됐다(마21:21). 예수께서는 제사장과 바리새인들로부터 질문을 받고 이들에게 진리를 가르치셨다. 이날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를 외치시며 멸망하게 될 조국의 운명을 염려하셨다.

수요일은 ‘침묵의 날’. 이날 예수님 행적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다. 베다니에서 조용히 지내신 것으로 보인다. 이때 예수님은 침묵속에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너희를 사랑하기에…너희를 살리는 길은 이길 뿐이기에…너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치러야 할 희생이기에…이 길이 아니면 너희가 죽게 되기에…” 주님은 이날 자신과 가장 많은 대화를 하시면서 가정 어려웠던 고뇌의 하루를 보내셨다.

목요일은 ‘번민의 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세족일’로도 불린다. 제자들에 의해 초라하게 준비된 유월절 만찬. 예수께선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눴다. 주님을 팔아 넘길 가룟 유다의 발도 씻어주시면서 섬김의 도를 가르치셨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시면서 긴 고별사를 남기셨다(요14∼16장). 만찬 후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하시고 내려오시다 체포되셨다.

금요일은 ‘수난의 날’. 예수께서 심문을 받으시고 오전 9시 십자가에 달리셨다. 주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기도를 드리셨고 오후 3시에 눈을 감으셨다. 이날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하는 나약함을 보였다. 그러나 칠흑같은 어둠이 내리는 삶속에 존재하지 않는 언어 하나. “주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성금요일 갈보리 산정에서 외치신 그 말씀은 지금도 가슴속의 검은 안개를 걷어낸다.

토요일은 ‘비애의 날’로 고난주간이 끝나는 날이다. 예수님이 무덤에 묻힌 이 날은 그리스도의 장사됨과 같이 우리도 죽고 장사되었다는 뜻에서 교회에서 세례를 베풀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이날을 ‘대토요일’이라고 부르며 단식하고 주님이 당하신 수난의 마지막 밤을 함께 보내고 부활의 아침을 기다렸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줬듯이 가족끼리 세족식을 갖는 것도 의미있으며 이웃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며 고난주간을 보내는 것도 바람직하다.

또 예수님의 부활과 고난의 행적이 기록된 마가복음 11∼16장을 묵상하거나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 19:26)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 27:46,막 15:34) “내가 목 마르다”(요 19:28) “다 이루었다”(요 19:30)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라는 ‘가상칠언’을 묵상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생각해볼 것을 제안 한다.


 


구체적으로 정리 해 보면


 


고난주간(1) 예루살렘 입성의 날(막 11:1-11)

고난주간 첫째 날 주일은 '예루살렘 입성의 날'입니다.
주님께서 이날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때 제자들이 어미 나귀와 새끼 나귀를 함께 끌고 오지만(마 21:1,7),
주님께서는 그 중에서 새끼 나귀를 탑니다(막 11:7; 눅 19:33).

인간은 프로를 선호하지만 주님은 아마추어를 선호하는 것을 보시지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는 교인들도 프로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실력은 프로이어도 정신은 아마추어리즘을 잃지 않는 곳을 선호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는 씁쓸한 기분을 느끼며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고난주간(2) 성전 청소의 날(막 11:12-19)

고난주간 둘째 날 월요일은 '성전 청소의 날'입니다.
이날 주님은 다시 성전에 들어가셔서 '돈에 눈이 먼 프로'들을 청소하십니다.
성전을 돈을 버는 장소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대담함에 우리는 놀라게 됩니다.
물론 성전 장사꾼들 이면에는 제사장들의 이권개입이 당연히 있었겠지요.
주님이 그 밥그릇들을 건드렸으니 제사장들이 주님에게 원한을 품었겠지요.

사람들은 다른 것은 참아도 밥그릇 건드리는 것은 못참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돈 때문에 얼마나 많은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여러분! 교인까리는 돈거래하지 마시고, 교회를 이용해 돈을 벌려고 하지 마십시오.
교회는 물질을 주고 받는 장소가 아니라 마음을 주고 받는 장소입니다.

고난주간(3) 변론의 날(막 11:20-25)

고난주간 셋째 날 화요일은 '변론의 날'입니다.
제사장들은 밥그릇을 건드린 주님을 올무에 빠뜨리려고 많은 질문을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 모든 질문에 지혜롭게 대답하시고 감람산으로 올라가십니다.
그곳에서 성전을 보며 말세에 관한 유명한 '감람산 설교'를 행하십니다.

그런데 이날 아침 전날에 저주한 무화과 나무가 뿌리채 마른 것과 관련하여
주님은 제자들에게 참된 믿음은 '밖으로 말해져야 하는 것'임을 가르쳐 줍니다.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여러분의 언어를 점검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대개 여러분의 생애에서 여러분이 믿고 말한 것을 거두게 됩니다.

여러분이 할 수 없다고 말하면 그 말이 여러분을 채찍처럼 휘감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 할 수 있다고 하면 그 말은 여러분을 포근히 감쌀 것입니다.

고난주간(4) 사랑과 배신의 날(막 14:1-11)

고난주간 넷째 날 수요일은 '사랑과 배신의 날'입니다.
옥합을 깨뜨린 한 여인의 사랑이 있었고 가룟 유다의 배신이 있었습니다.
특히 여인의 이야기는 계산을 초월한 참된 헌신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줍니다.

목사는 물질적 헌신으로 성도를 구별하지 않도록 계산을 초월해야 합니다 .
성도들도 마찬가지로 물질적 헌신의 유무로 구별의식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헌신한다고 우월감을 가지게 되면 그 헌신은 안함만도 못하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헌신하지 못하는 것에 지나치게 자존심상해 할 필요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강요가 없는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헌신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때 성령께서 주신 부담에 단순하고도 겸손하게 응하면 될 것입니다.

( 주께서 나를 필요로 하실 때에 )
하나님! 3일간 연속된 성전에서의 갈등으로 긴장감에 휩싸인 주님에게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정성이 주님께 얼마나 시원한 생수가 되었고,
그 순간 얼마나 필요한 행동이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를 필요로 하실 때에 그 감동하심에 반응하여
삶의 존재와 의미를 성공적으로 연출해 나가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고난주간(5) 최후 만찬의 날(요 13:1-11)

고난주간 다섯째 날 목요일은 '최후 만찬의 날'입니다.
이 날 다락방에서 세족식, 성찬식, 유언설교를 행하시고 겟세마네로 가십니다.
세족식과 관련된 본문에서 예수님의 태도는 우리들을 참으로 감동시킵니다.

먼저 마지막임을 아심에도 불구하고 침착한 주님의 모습을 보십시오(1절).
내일 종말이 닥친다고 해도 흥분한 필요가 없다는 점을 배우지 않습니까?

그리고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십시오(1절).
사람은 자기 사람이라는 것이 확실해지면 사랑의 노력을 포기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확실한 동반자에게도 사랑의 노력을 포기하지 말 것을 주님은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선생님으로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는 주님의 모습을 모습시오(5절).
불신앙이 수치를 발견하는 그곳에서 신앙은 항상 영광을 발견합니다.
교만이 수치를 느끼는 그곳에서 겸손은 항상 영광을 느낍니다.
나에게는 조금 인색하고 남에게는 조금 관대한 겸손한 심령이 되지 않겠습니까?


고난주간(6) 수난의 날(막 15:16-39)

고난주간 여섯째 날 금요일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수난의 날'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승리를 위해 십자가의 삶이 필요함을 가르쳐 줍니다.
내가 죽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원리입니다.

여러분! 내가 변하지 않고 '그 사람'을 변화시키는 길은 불가능한 길입니다.
주님께서도 그 길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십자가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안된다는 하시는데, 내가 어떻게 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 사람을 변화시키려고 하기보다 내가 죽는 것이 쉽고 바른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최대의 신앙은 자기의 죽음을 고백하는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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