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한 것은 남자와 여자에게는 그 역할에 차이가 존재한다. 즉 아무리 평등을 주장해도 남자가 아이를 출산하는 일은 없는 이치와 같다. 그렇다고 남자 없이 여자가 제 마음대로 아이를 낳을 수 없다. 성경은 말한다.
분명한 것은 남자와 여자에게는 그 역할에 차이가 존재한다. 즉 아무리 평등을 주장해도 남자가 아이를 출산하는 일은 없는 이치와 같다. 그렇다고 남자 없이 여자가 제 마음대로 아이를 낳을 수 없다. 성경은 말한다.
오랜만에 친구들이 부부동반으로 모여 저녁식사를 하게 됐다. 다른 친구들은 부인을 향해 “이봐”“당신” 정도로 부르는데 유독 한 친구만이 자기 아내를 부를 때 “달링,하니,여보,자기” 등 아주 닭살(?) 돋을 정도의 호칭을 쓰는 것이었다.
옆에 있던 부인들의 눈꼬리가 자기 남편을 향해 치켜올라가기 시작했다. 참다 못한 친구 중의 하나가 그에게 물었다.
“이봐,짜증나게 왜 이러는 거야! 자네 나이가 몇 살인데. 뭐 달링,자기, 또 하니는 뭐야? 자네 분위기 깰 거야!” 그러자 그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미안해. 사실 오늘 아침부터 집사람 이름이 기억이 안 나잖아”
아담은 하와를 뭐라고 했을까?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창 3:20)
“하와란 무슨 뜻일까?” 신혼 여행의 첫날밤을 보낼 때 한사람이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그때 아내는 “그야 ‘산 자의 어미’란 뜻 아니예요?”하고 대답했습니다.
“하와란 ‘하늘같이 남편을 받드는 와이프’를 말하는 것”이라 했다.
가만 보면 아담이 하와에게 이름을 부여했지 하와가 아담에게 이름을 부여하지 않았다. 여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를 두고 헤드십(Headship)이라 한다. 즉 하나님은 남자를 머리로 세우셨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전 11:3)
사탄은 바로 이 헤드십을 공격하는 것으로 가정파괴를 시작했다. 즉 아담을 상대하지 않고 하와를 흔들어댐으로써 아담을 무시하고 나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설계를 흔들어대는 것이었다. 이런 하와의 태도는 창세기 3장 16절에 잘 나타나 있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라”
여기서 ‘남편을 사모하고’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남편을 그리워한다거나 사랑하고 연모한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러나 전혀 뜻밖이다. 이 말은 남편을 주장하고 싶어하는 욕구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래서 어떤 번역은 “네가 네 남편을 주무르고 싶어하지만”이라고 번역했다. 마치 “죄의 소원(죄가 너를 조절하려 하지만)이 있지만 너는 죄를 다스리라”(창 4:7)는 문장 구조와 같다.
분명한 것은 남자와 여자에게는 그 역할에 차이가 존재한다. 즉 아무리 평등을 주장해도 남자가 아이를 출산하는 일은 없는 이치와 같다. 그렇다고 남자 없이 여자가 제 마음대로 아이를 낳을 수 없다. 성경은 말한다.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고전 11:11) 우리는 이 사실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적 리더십을 아담(남자)에게 맡기셨다. 그 헤드십(머리됨)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남편을 무시하는 일은 하나님의 계획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이제라도 가정의 행복을 위해 남편의 머리됨을 존중하자. 그것이 곧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되기 때문이다.
왜 신부들은 결혼식에서 면사포를 써야 하는가? 이유는 한가지다. ‘이제 내게는 머리가 없습니다. 오직 남편만이 나의 머리입니다’ 누군가가 꺼낸 우스개인데 깊은 의미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