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5일 목장 교안 보조교재 2005-06-08 16:05:32 베다니 마을에 잔치가 왜 벌어졌습니다. 나사로가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내가 영적으로 육적으로 살아나야 합니다. 이곳이 당신이 살아나는 자리가 되기 바랍니다. 살아나는 자리는 어디든 앉아만 있어도 복이 됩니다(오순절 마가의 다락방/ 죽이는 자리에 앉지 마아/ 시1: 오만한자) 어떻게 살아났습니까? 예수님의 나오라하는 말씀에 의지하여 죽어서도 순종을 했습니다(살아서도 안하나) 죽었다가 사는것 보다 안죽고 사는게 더 큰 기적이다. 교회안에서 나사로 아닌 나까닭에 날마다 잔치가 배설되고 있는가? 나까닭에 교회 안에서 잡음이 생기고 나 까닭에 교회 앞에 불화가 생기고, 나 까닭에 교회 안에서 갈등이 빚어진다면 어찌됩니까? 하나님 집사인 나 까닭에, 권사인 나 까닭에, 장로인 나 까닭에 매일 우리교회에 주님 모신 잔치가 열리게 하옵소서 기도하고 싶지 않습니까? 그런데 누구를 위한 잔치인가가 중요 합니다. 잘못하면 나사로를 위한 잔치라고 해석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2) 했습니다. 교회에서는 항상 주님을 위해 일을 해야 합니다. 봉사할 때도 전도, 헌금, 구제할 때도 주님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나를 위해서 하면 안됩니다. 주님을 위해서 항상 내뜻이냐 주님뜻이냐 물으면서 크고 작은 모든 일을 할때 주님을 위해서 입니다. 주님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서입니다. 베드로 앉은뱅이된 자를 일으킬 때에 다른것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이름 아닌 예수 이름으로 걸으라 했고,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누구를?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이것이 잔치집 같은 교회 모습 입니다. 베다니는 본래 좋지 않은 소문이 나던 곳입니다. 그 소문을 에수님 손에 붙들린 나사로가 일거에 바꿨습니다. 베다니는❶ "고난의 집" "가난한 집"이라는 의미로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누이들과 함께 근근히 살아가던 고생스런 곳입니다. ❷나사로는 중병에 걸려 고생하다 죽은 소망이 없고 절망뿐이었던 곳 입니다. ❸나사로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자였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요11:4). "예수께서 본래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5). 병들고, 죽게 되는 배신과 조롱의 자리 였습니다. ❹나사로의 이름의 뜻 나는 "하나님께서 도우신다" 인데, 전혀 하나님의 도움을 못 받는듯 보였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모두 슬퍼하던 슬픔의자리 였습니다. 그런데 나사로가 바꾼 겁니다. 죽어서도 순종하므로 일거에 바꾸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면.... 왜라고 말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인내 하세요, 오늘도 주님이 사랑하시는 성도가 주님께 충성하고 또 헌신하지만 병에 걸릴 수도 있고, 실직할 수도 있고, 사업이 망할 수도 있고, 어려운 환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당할 때 꼭 기억 할것은 예수님이 먼저 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사랑하시기에 모든 것을 책임지실것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것도 아십니다. 나까닭에 예수 믿는자들이 믿음생활하면서 병들었던 부분, 죽었던 부분, 망하였던 부분, 어려웠던부분, 새로워지고 부활되어지고, 말씀과 은혜로 변화되어야 나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역사가 나타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단3장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생명 내걸고 신앙으로 바로 서니까. 느브갓네살왕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어 다른신을 섬기지 아니하고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내가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나라와 각 방언하는자가 무릇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신이 없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믿음을 지키다가 불같은 시험을 당할 수 있습니다. 믿음 지키다가 시험당하면 하나님은 분명히 책임을 지실텐데 불같은 시험을 이기고. 나까닭에 예수을 믿는자가 많이 생기는 축복이 있기 바랍니다 단6장에도 다니엘 까닭에 다리오왕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체험하고 찬양하고, 많은 자들에게 하나님을 전하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고, 창41장에도 요셉이 까닭에 바로왕이 하나님을 지혜의 신으로 고백하게 하였습니다. 나 까닭에 내 가족과 친척과 동료과 이웃과 그밖에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저주와 멸망의 자리에서 희망과 축복의 자리로 나 올수 있기 바랍니다. 어떤면에서 나사로는 가장 가치 있는 삶, 가장 축복된 삶을 살았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는 일, 주의 은혜 입는일(죽었다가 살아남), 주와 함께 있는 일, 주의 말씀 듣는 일, 주께 순종하는일, 주님을 증거하는 일,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일을 했기 때문 입니다. 그것이 영원히 남는 일입니다(하늘의 별 처럼 빛나리라)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도록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마음을 활짝 여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을만한 예쁜 짓들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저 변화된 모습으로 주님과 함께 앉아 있기만 해도 됩니다. 11절에 "나사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가서 예수를 믿었도다" 이 구절에서 저를 사로잡는 말은 바로 "가서"라는 단어입니다. 집으로 돌아가서, 삶의 현장으로 되돌아 가서도, 나사로와의 만남이나 그가 주님과 함께 했던 이야기들이 잊혀지거나 사라지지 않고 계속 생생하게 살아 역사하므로, 결국 그들을 예수 믿는 사람들로 만들었다는것 입니다. 지금 보다 돌아가서 삶의 현장에서 더큰 은혜와 축복으로 다가 오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주신 은혜를 잊어 버리지 말고 새겨야 합니다. 베뢰아 교회 신자들 처럼. 예수 믿는 사람들의 생활을 보면은 저절로 전도가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복받으며 사는 것을 보면, 들으면 저절로 전도가 됩니다. 나까닭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항상 있지 않습니다. 구원받을 기회가 항상 있지 않습니다. 주님을 섬기고 헌신 할 수 있는 기회가 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회개할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에서가 하나님의 축복을 경홀히 여기다가 축복 권을 빼앗긴 후에 후회하여 회개할 기회를 찾았지만 회개할 수 없었습니다. 토마스 카알라일은 평생 살면서 자기 아내에게 수고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내가 어느 날 병들어서 죽었습니다. 그는 시체를 붙들고 " 여보 5분만 눈을 떠다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 이 말을 하고 싶다구요. " 울부짖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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